난임일기 - 진상짓

병원에 약을 받으러 갔다.
(난임치료에는 온갖 약이 필요하고, 몇 종류는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으로 가야하고, 주사제는 병원에서 받는다.)
물론 약을 받는 것도 미리 예약을 했다.
의사를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안만나는 것이기에 10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사를 만날 때 예약시간에 만나본 적은 단 한 번 뿐이다. 난임센터는 늘 밀려서 20분~40분은 기다린다. )
사람이 하는 일이니 늦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단 한 번도 기다림을 이유로 언성을 높이거나 진상짓(?)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료 시작 전에 빈 말이라도 “오래기다리셨죠?”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생각대로 처방은 빨리 나왔고 간호사가 주사제를 챙겨줬다. 그리고 말했다.
OO약이 없으니 잠깐 기다리세요
잠시 뒤 그 간호사는 다른 간호사에게 약을 가지고 오라고 했고 부탁을 받은 간호사는 약가방을 들고 나갔다.
그리고- 20분쯤이 흘렀다
간호사는 돌아오지 않았다. .
스테이션에서 “약국에서 안왔어?”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기다리라고 했다.
그 후로 30분이 흘렀다.
기다리다 못한 나는 약국에 가겠다고 말하고 병원을 나섰다. 시간이 금인데 의사도 안보고 50분씩 낭비중이라니- 병원 근처 약국에라도 들러서 약이라도 받는게 좋을 것 같았다.
1층 로비로 내려가니, 아까 약을 가지러 간 간호사가
약가방과 온갖 물품(환자복? 기타물품 등)을 엄청 큰 트롤리에 담아서 오고있었다.
자기 볼 일 다보고 온걸까?
순간 화가 치밀었다.
설명 한 마디 듣지 못하고 사람은 기다리고 있는데
저게 뭔가 싶었다.
일단 내려왔으니 약국으로 향해 약을 받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 너무 화가나서, 그리고 더이상
시간을 낭비하기도 싫어서 다섯개층을 그냥 계단으로
올라갔다.
아까 로비에서 마주친 간호사가 보였다.
다가가서 제 약 가져오셨냐고 물었더니,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로 돌아보기만 한다.
‘에? 너 조금전에 다른 간호사에게
약가지러 간다고 한 거 잊은거야?’
시간이 50분이 지나서 잊을만도 하다.
스테이션에 같은 질문을 하니 약을 주신다고 한다.
그렇게 꼬박 1시간을 비대면 동일약물처방에
사용했다.
무슨 연유로 약이 늦는지 안내? 없-다.
낭비한 시간에 대한 사과? 없-다.
너무 화가나서 인사도 하고싶지 않아 그냥 나왔다.
일 분 일 초라도 더 머물면 화가 더 날 것 같았다.
내 화가 정당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화를 내는 것이 진상짓인건지.
밥도 잘먹고 몸도 불편한 것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느껴진 감정은 분명 아니었다.
병원이라는 곳이 ‘친절’서비스를 받는 곳은 아니지만
병원 일처리에 대한 안내는 ‘업무’아닌가.
왜 늦어지는지 ‘안내’ 한 마디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당분간은 간호사들에게 인사조차 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내가 진상인걸까?
그 쪽에서 나를 사람으로 대하지않는데
나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비용이나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으면 끝이다.
누구도 자판기에 돈을 넣고 음료수를 꺼낼 때 자판기에게 꾸벅 인사하거나
고맙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늘 내가 간호사에게 느낀 화는, 말하자면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